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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탐방] 서일농원 된장 장인 서분례 이야기 조회 : 5437



[나의 도시 나의 인생] 안성 / 된장 장인 서분례
조선일보 박종인기자

매니큐어 지우고 안성 돌밭 뒹굴었다
남사당패 바우덕이처럼 30년 외줄 타며 장을 담갔다
이방인을 거부하던 도시는 나를 받아들였다

안성은 푸른 평야와 더 푸른 포도밭으로 출렁거렸다. 설사라도 할 듯 아까까지 꾸르륵대던 먹구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매미들이 천지사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들이 와 이래 시끄럽노. 순식간에 독한 열기를 회복한 여름날 오후, 서분례(61)는 밀짚모자를 쓰고 장독대로 걸어간다. 그녀는 된장장이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이러구러하게 이 나른하고 보수적인 도시 안성과 인연을 맺은 지 33년째다.

1977년 봄이었다. 다니던 절 큰스님이 "당신은 이곳에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리라"며 점지해준 땅을 보지도 않고 구입했다. 지금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돌밭 3000평(약 1만㎡)이다. 남편이 여행사를 운영할 때라 형편은 좋았다. 며칠 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걸려 가보니 사과랑 배나무 몇 그루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나처럼 치장하기 좋아하는 여자가 노후를 이 시골에? 나중에 양로원이나 짓지 뭐'하고 웃고 말았다.

1983년 설날이었다. 음식 바리바리 싸서 여행사 직원들과 함께 수락산 기슭에 있는 한 양로원에 봉사를 갔다. 명절만 되면 남 보란 듯이 하던 연례행사였다. 노인 한 명이 인절미를 먹다가 컥컥대더니 숨을 못 쉬고 죽었다. 황망한 죽음 앞에서 다른 노인들은 "영감탱이, 죽으려면 내일 죽지 왜 우리들 놀지도 못하게 하나"라고 욕을 했다. 진심이 없는 자기만족적인 봉사의 결과를 눈앞에서 똑똑하게 봤다.

서분례는 그날로 매니큐어 지우고 손톱 깎고 목걸이·귀고리·반지 다 떼고 돌밭으로 들어갔다. 물 한 번 묻혀본 적 없는 손으로 호미를 쥐고 고무신 신고 땅을 골랐다. 방방곡곡 수몰지구에서 소나무들을 가져와 심었다. 남편이 여행사로 번 돈 돌밭에 퍼부었다.

그 돌밭에 콩을 심었다. 첫해에 다섯 가마가 나와서 돌밭에 가마솥 두 개 걸어놓고 메주를 쑤었다. 지리산 뱀사골에서 가져온 옹기 30개에 된장을 담갔다가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친정엄마 된장보다 맛있다"는 친구들 덕담에 이듬해에는 열 가마로 늘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된장 값이라며 10만원짜리 수표를 보낸 것이다. '된장 팔면 우리 양로원 부자 되겠다.' 서분례는 그리 생각했다고 한다. 시립양로원에 수용된 노인 한 명당 하루 식비가 1000원이 배정되던 시절이었다. 다섯 가마가 열 가마가 되고, 100가마가 되던 1987년, 양로원 터 한 쪽에 비닐하우스 만들고 서일농원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안성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충북 광혜원 쪽으로 가다 보면 칠장사가 나온다. 벽초 홍명희가 의적 임꺽정의 무대로 상정했던 절이다. 궁예가 이곳에서 무예를 닦았다는 절이기도 하고, 과거를 보러 가던 어사 박문수가 꿈속에서 시제를 받아 장원급제를 했다는 절이기도 하다.

된장장이로 변신한 서분례는 칠장사에 가서 기도를 했다. 부자가 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양로원 만들게 해달라고. 식비 1000원이 아니라 1만원짜리 양로원 만들어서 내 죄 갚게 해달라고.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 남사당패 우두머리 바우덕이가 살던 청룡사도 그녀의 단골 기도처였다.

1996년 한 여성잡지에 서분례 이야기가 크게 나갔다. 이후 좀 산다는 집에서는 안성을 찾아가 밥 얻어먹고 된장 사서 오는 게 유행이 됐다. 순식간에 신문·방송이 이틀이 멀다 하고 서분례를 찾아왔고, 어느 틈에 그녀의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다시 끼워져 있었다. 때때옷 입고 얼굴에는 분칠하고서 장독 속으로 머리를 처박는 장면도 연출했다. 명망(名望)과 부(富) 앞에서 초심(初心)이 망각된 것이다. 결국 이듬해 말 IMF가 터졌다.

농장에 이식한 낙락장송들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지 한참이지만 서분례는 뿌리가 뽑히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수퍼마켓에서 양조장(醬)을 샀고, 재래장(醬)은 500개가 넘는 항아리 속에서 세월을 넘어갔다.

도시 또한 비정했다. 안성은 20년 넘게 돌밭 고르던 여자에게 이런저런 법규를 내세워 앞을 가로막곤 했다. 농장 안에 길을 내려면 농지 불법전용이라고 했고, 대문을 넓히려 해도 다른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덕아 덕아 바우덕아/ 바람에 손목 잡혀 이 세상에 왔느냐/ 길 따라가도 편히 못 가는 인생/ 어찌하여 너는 외줄을 타려 하느냐/ 청룡사 푸른 하늘 멍텅구리 구름같이(…)/ 바람 부는 청춘아 (감태준 '덕아 덕아 바우덕아')

서분례는 문득 자기의 새빨간 손톱을 보고 통곡했다. 그제야 서분례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리라'던 젊을 적 큰스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손톱을 다시 깎고 장독 속으로 머리를 박았다.

IMF가 잊힐 무렵 안성댁 서분례의 농장에 다시 손님들이 나타났다. 피폐해진 가장들의 심신을 추스르려는 여자들, 그 가족들이 안성으로 와서 된장을 사갔다. 1999년에 나라에서는 그녀를 신지식인으로 선정했다. 대학교에서는 고졸 출신이라고 스스로 아쉬워하는 이 여자와 함께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0년 겨울에는 일죽IC에서 농장까지 2㎞ 도로가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들로 인해 주차장이 돼 버린 적도 있다.

농장은 이제 장을 배우려는 학생들, 농장 구경 온 가족들, 그리고 3만평(약 10만㎡)으로 늘어난 농장 뒤 양지바른 6000평(약 2만㎡) 부지에 양로원을 설계하는 사람들로 한 해에 20만명이 오는 공간이 되었다. 예술인들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땅, 문화와 전통 가득한 안성에 또 하나의 관광지가 생긴 것이다. 농장은 오는 11월 G20 회의에 참가할 정상들의 방문지 후보에 올라 있다.

2004년 11월 5일 서분례는 크게 울었다. 도무지 받아줄 것 같지 않던 도시 안성이 그녀에게 '안성을 빛낸 시민'이라는 상을 준 것이다. 가난한 타지에서 태어나 제대로 공부도 못한 안성시민이 "나 이제 여기에 뼈 묻고 죽겠다"고 했다.


기사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03/20100803019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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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탐방] 서일농원 된장 장인 서분례 이야기  
2010/10/05 5437